하늘 보며 하루를 사랑으로

하늘비/성경쓰기

극기하여라 (마태5,27-30)

비아루까 2013. 11. 12. 22:01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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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범죄예방을 위해 개발된 시스템. 세명의 예지자는 앞으로 벌어질 범죄자를 집어낸다. 그 예지자들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로봇처럼 존재한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그들의 뇌에서 전달되는 미래 범죄자의 이름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다. 복권을 추첨하듯이 이름 적힌 공이 굴러 내려오면, 그 이름의 주인공은 영락없이 미리 체포되는 시스템이다. 아직 범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끝내 영화의 주인공은 그 시스템의 부조리를 밝혀낸다는 이야기.

 

인간은 범행을 결심했다가도 돌이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행위의 일부분만으로는 진실을 가려낼 수 없다는 것 등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성을 보고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다못해 잘 생겼다든가, 예쁘다든가 하는 느낌이 들 것인데...

눈으로 보는 것이 먼저인가, 음욕을 품는 마음이 먼저일까?  보는 것이 먼저겠다. 봄으로 해서 품게 될 테니까.

그러면 안 보면 음욕이 일지 않는가? 상상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마음이 문제가 되겠다.

 

          성경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어서겠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자의적으로 해석할 내용, 비유적으로 알아들을 내용들이 따로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 기계로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고 계시고, 

          그 나약함을 이겨낼 능력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고, 믿고 계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역시, 우리에게는 매일 매순간 선택의 몫이 남겨진다.

          우리 앞에는 항상 [축복과 저주]가 놓여 있고, 선택은 우리의 자유다. 또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 선택과 책임은 우리의 '마음'에 주어진 몫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