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며 하루를 사랑으로

물의노래/사랑안에거닐라 773

도로 위에서

동기 오라버니 장례식을 마치고, 세 시간동안 북쪽에서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동기는 옆에서 졸다깨다 한다. 내 머리속은 비어있고, 몸도 그냥 앉아있을 뿐, 자동차 저 혼자 달리는 듯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채 마음 속에서만 낙엽처럼 뭔가가 쌓인다. 가까이 도로변에, 멀리 산새마다 단풍이 찬란하다. 햇빛이 비추기 때문이다. "아름답네... " 혼잣말을 한다. 마음은 무심하다. 사는 것, 죽는 것, 고통, 행복... 말마디들이 떠올랐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마음은 점점 더 텅 비어져간다. "아웅다웅 할 것 없다....." 모든 것을 '무'로 치부해 버릴까봐 순간 겁이 났다.

자신과의 만남

사람관계에 공을 들인다. 나름대로 이해, 공감, 수용하려 최선을 다 한다. 선한 지향과 기도까지 곁들인다. 그 상대방을 위해서. 그러다가 문득문득 뒤돌아가거나 손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는 다시 멈춤 안에서 한발을 내딛는다. 문득 스며나는 생각,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정 순수히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

새 마우스 덕에

언니 카톡에서 사진이 떴다. 냉장고다. TV 광고에서 보던, 가구같은 냉장고. 나의 첫번째 반응은, '이전 게 못쓰게 된 것도 아닐텐데...' 였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자신의 선택에 공감해주길 바랄테니까. 물건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그동안 20년 넘은 냉장고를 사용하면서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를 좔좔 설명한다. 목소리에서 흥분이 전해졌다. "그동안 냉장고 성에 걷어내느라 고생했네~, 좋겠네~, 멋지네~, 잘했네~" 내심 물건의 가격이 궁금했으니 기다리다가, 언니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드디어 물었다. "와~~ 엄청 비싸다!! " 언니도 그 점은 인정하지만 제품이 워낙 맘에 들고, 그동안 내내 바라던 바가 이루어져서 마음이 좋다고 한다. 건강도 좋지 않으면서 깔끔한 살림..

사람을 살리는 일

갈 사람 가고, 올 사람 오고. 주임님의 인사이동 날. 신기하다. 내게서 설은 에너지가 많이 사그라진 탓인지, 사람들의 움직임에 그다지 동요되지 않는다. 여유롭다. 보내고 맞이함에 있어서, 각자가 할 바를 하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보내고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는 뜻이란다. 참 지혜롭지 않으면 적절히 행할 수 없는 행위다. 단순하게 끼거나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할 때, 자신의 몫과 다른 이의 몫을 제대로 분별하면서 더불어 하는 것을 말한다. 낄끼빠끼의 성향인 이가 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도 끼고.... 한마디로, 나설 때 물러설 때를 분간하지 못하고 본인이 나서서 좌지우지 휘두르는 모양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서 이런면을 보..

빅토르는 떠나고

어제, 구피 한 마리가 안 보인다. 빅토르다. 바닥에 있다. 죽었다. 첫 세대가 모두 떠났다. 오늘, 유독 한 마리의 의 색이 바랜 듯했다. 수면에 뒤집혀있다. 죽었다. 다른 세 마리는 내가 다가가면 놀라 팍팍 몸을 숨긴다.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안되겠다. 도로 제 집으로 보내자. 어항을 비웠다. 날이 선선해질때까지 빈 채로 지낸다.

남은 (자) 구피 빅토르

한 마리 남은 구피의 몸짓을 보니, 그 흔들림에 탄력이 느껴진다. 물 중간 부분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한다. 아, 살겠다! 이름을 빅토르 라고 붙였다. 숫컷이까. 이틀을 더 두고 보았다. 혼자서 천천히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외로워보였다. 구피 네 마리를 더 데려왔다. 숫컷 한 마리, 암컷 세 마리. 이제 다섯식구다. 한 눈에 들어온다. 빅토르가 활기를 보였다. 다른 구피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함께 머물기도 하고.... 다행이다. 자꾸만 눈이 간다. 숫자를 센다. 다섯 마리가 다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구석에 있어서 보이지 않거나 바닥 가까이에 닿아 있으면 또 마음이 쓰인다. 한참을 요리조리 들여다 본다. 잘 움직이는지, 몸의 색깔은 괜찮은지.... 이대로 잘 살면 좋겠다.

돌아갈 곳

구피들이 하나둘 죽고, 지금 한 마리만 남아있다. 움직이지 않고 정지된 상태로 떠 있다. 구피들도 펜데믹을 맞아 견뎌내지 못하고 이렇게 삶의 자리를 떠났다. 네안데르탈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혼자 남았있던 그 한 사람이 생각난다. 가슴이 미어진다. 바닥에 깔려있는 구피를 꺼내 화분 흙 속에 묻었다. 오며가며 어항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마지막 한 마리도 떠날 것인가, 살아 남을 것인가.... 동생 수녀님이 그만 들여다보라고 한다. 자책감에 속상하고 미안해서 저절로 가는 눈길을 어찌 하나. ***** 인간은 자신 안에 생명의 원천이 없기에 늘 죄를 짓고 넘어진다. 하지만 아침이면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다시 힘있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주..

순리대로 흘러

'문자를 씹는다'는 말을 한다. 회답이 없다는 뜻이다. 답하지 않는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짐작가는 경우가 있다. 짐작이 대개는 '나' 중심 적이고,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그래서 씹힌 상태로 흘려보낸다. 요즘 마음에 앙금처럼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번에 '문자를 씹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짐작은 간다. 문자가 아닌 '대면'을 해볼까 하는 생각과 그냥 '오해받는 용기'를 택하자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 '오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오랜 세월 파도처럼 일렁여왔다. 그동안은 뭔가에 묶여있는 듯 부자유스러움이 늘 자리했었는데, 문득,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깊이 이해하고 잘 지내야 한다는.... 이해로써 서로를 성숙시켜나가는 관계, 바라고 바라는 바..

성심대 방학

어르신 대학(성심대학), 방학을 했고 9월에 개강이다. 방학하면서 나에게 한 말씀 하란다. 내가 어르신들께 여쭸다. "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뭐지요? 방학이지요! 여러분들도 방학하니 좋으시죠?"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얼굴이 일그러진다. "안 좋아요!" 울컥해서 얼른 제창을 하도록 했다. "자, 양 팔을 번쩍 들면서 외치세요~" "방학이다!!" 어머니들이 양 팔을 들면서 따라 하시긴 하는데, 왠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났다. 어머니들께서 크게 서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힘차게 외치자고 권했다. 이번에는 다섯 번을 연이어서... 어머니들은 또 잘 따라 하신다. 마지막으로 권했다. "개강이다!! 할까요?" 어머니들은 아까보다 환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