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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노래/사랑안에거닐라

수도원 방문1 수비아코

비아루까 2022. 4. 6. 22:11

이집과 저집을 오가며 지낸다.

 

지난 주말에는 동생집에 갔다.

제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는 주말이라야 시간을 낼 수 있다.

주중에는 가족들끼리도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하루를 닫는 날들이 많다고 한다.

 

토요일에 일을 좀 했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 상대방의 시간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내가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묻고 싶은 내용을 한글로 적고 동생이 제부에게 설명을 하면서 

동생 부부 둘이서 가장 적합한 문장으로 작성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특히 제부에게 참 고맙다.

부담스럽고 귀찮을텐데 성심껏 도와줄 뿐만아니라,

말도 통하지 않는 처형에게 설명도 열심히 해 준다. 

정말 편하게 해 주니, 이렇게 다리를 뻗는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주일에 셋이서 수비야코를 다녀왔다.

동생부부는 이미 다녀온 곳이지만 나를 위해서 간 것이다.

산 위 마을이어서인지 산 윗부분에 눈이 쌓여 있었고, 수도원 마당 잔디밭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우리는 몰랐는데, 4월 15일까지는 자동차에 체인을 감지 않은 채로 이곳에 오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렸다.

(제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수도원 이름은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이지만 실제로 성녀는 여기서 사진 적이 없다고 한다.)

수사님들이 몇 안 되는데다가 연세드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보기에 조금 젊다 싶은 분은 두세분이다.

미사 때 향복사를 하시는 분이 연세가 있어 보이던데,

거양성체 때 맨 바닥에 무릎을 꿇고 향을 뿌리시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음이 착잡했다.

베네딕도 수도원 미사라 하면, 아름다운 성가와 전례가 먼저 떠오르던 그 시절은 이미 가버린 건지...

 

미사 후에 안내하는 분의 인도에 따라 수도원 내부(일부분이지만)를 돌아보았다.

중정이 세개, 각각 우물이 있었는데, 한 곳에는 항아리도 옆에 있었다.

우물물은 그 항아리를 통해서 주방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고 한다.

 

수도원 종탑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되고 높다고 했던가.....? 어사무사 하다.

나는 말도 전혀 못 알아들으니, 그저 속으로 그 옛날 성인의 현존을 생각하면서 기도했다.

내용이야 검색하면 있을테니까... 중정 복도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눈에 띄길래 사진에 담았다.

내 나름의 순례다.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차 안에서 먹고, Bar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몸을 녹이기로 했었다.

그런데... 테이블 없이 그냥 서서 마셔야 하는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수비아코 동굴이 있는 수도원 안내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곳에 네로 황제가 쓰던 별장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가는 길은 역시 소박해서 아름다운 시골길이었다.

별장터에 낮은 벽들만 있었다.네로도 이곳이 좋은 곳인줄은 알았나보다.

 

수비아코 수도원까지 걸어 올라갔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부가 말한다.

요즘 수도원들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고, 이제 점차 부자들이 사유화해서 자신들의 부를 더 크게 늘릴 것이라고...

왜냐하면, 요즘 수도자들이 성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수도생활을 지원하는 이들이 없어지고,

신자들도 종교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성과 속이 혼돈된 상태의 삶'이라고 알아들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길 잃은 수도자'라는 자성의 말마디가 떠올랐다.

동굴 수도원 전망대에서 본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과 수비아코 마을
성 스콜라스티카 수도원 중정 복도에  모셔있던 십자가
베네딕도 성인이 기도하던 동굴이 있는 수도원
수도원 밭. 돌산 위라서인지 흙 한 줌도 귀히 여겼을 것 같은 손길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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