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며 하루를 사랑으로

물의노래/사랑안에거닐라

만남 - 분과 모임

비아루까 2014. 6. 30. 16:19

2014. 6. 23(월) ~ 24(화)

 

분과 모임 하는 날, 영호남에서 소임하는 자매들이 속속 모여든다.

오십 여명, 한분도 빠짐 없이 와야 하는데.... 저~ 땅끝 해남에서는 언제 도착할까...

장독대에서 접수를 보는 자매들의 모습이 정겹다. 역시 우리는 단순, 소박함과 벗해야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요셉의 집 경당. 작년에 신축했다. 멀리서, 위에서 내려다 보면, 숲속에 내려앉은 나비모양을 하고 있다.

외양이 아담하고 예쁠 뿐만 아니라, 내부도 짜임새 있게,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경당이다.

몇몇 교우들이 방문을 오셨나보다. 이 집은 늘 오가는 사람이 있고, 쉬어가는 이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오늘, 내일은 우리들 차지다.

 

 

경당의 문은 철골과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다.

문은 공간을 나누고, 두 공간안에서 다른 시간을 살게 해 준다.

문의 중앙, 십자가 모양의 어느 부분이든지 잡아당기면 묵직한 문이 느리게 열린다.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십자가는 하느님 계시는 곳으로 가는 문이다.   

그 문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는다. 그가 문을 열고 통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문의 바깥과 안은 다른 빛깔을 내고 있다.

언제나 빛을 받아 안은 쪽이, 제 밖으로 자신의 빛깔을 드러낸다.

태양이 하늘 높이 빛날 때는 문 밖에서 안을,

태양이 숨어들고, 가느다란 인공불이 켜질 때는 안에서 밖을 

그렇게 비추어 준다.

그리고 그 모든 빛이 잠들 땐, 저들도 평안한 쉼을 맞는다.

 

'집'은 우리의 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내 마음의 문이 빛을 향해 투명할 때,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빛으로써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안에 빛을 간직하고 있을 때, 내 안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제 빛깔을 비추어낼 것이다.

빛을 받고, 빛을 비추어내는 것

그것은 하느님과 나,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를 이어주는 삶의 역동이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시대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어떻게 함께 해야 할까,

나의 개별적인 처지나 욕구를 떠나

교회 안에서, 교회 밖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 삶을 소진해야 할까...

 

이러한 주제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자매들의 발걸음이 분주히 움직인다.

"현 시대는 돈과 권력의 유혹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우리 또한 그 유혹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돈과 권력에 맛들여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자문한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방마다 불이 켜지는 시간이 되면.

마음은 방랑자가 된다. 

떠나온 고향이, 저녁 밥짓는 냄새가, 나를 부르는 엄마의 큰 목소리가 괜시리 그리워져

 멀리 바다 너머 하늘만 바라본다.

하루 중 마음이 가장 여리고 착하고 약간은 애잔해지는 시간,

이 때 우리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간다. 하느님 안에 내 삶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가장 착한 이 시간에 또래들끼리 모여 허-심-탄-회한 이야기로 여리고 애잔한 마음을 풀어내고,

 다시금 새날을 맞을 준비를 한다 .

 

 

 

안개인지 연기인지 서로 포옹하는 아침,

집주인은 아침부터 군불을 지피고

자매들은 저마다 포근한 안개에 싸여 아침을 맞는다.

 

 

 

홀로...

아침산책을 나선다. 그의 손에는 '말씀집'이 들려있다.

하루를 열고, 살고, 닫는 줄곧

'말씀'은 침묵 속의 밀어, 

나무와 흙과 바람과 새와 벌레들은 밀어의 해독자.

 

 

 

산책길을 걸어 다다른 곳, 예수님이 계신 곳,

숲속의 작은 집,

수련기 때 자매들과 어울려 부르던 노랫말이 떠오른다.

 

" 깊고 깊은 숲속에 조그만 집을 찾아 그대여 오세요. 새소리에 잠깨는 새벽엔 따뜻한 커피를 드리죠.

창밖에는 시냇물 흐르는 집을 찾아 그대여 오세요. 별빛 속에 산과 들 잠드는 밤이 오면 모닥불 피우죠.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기 꽃처럼 피어나고 우리들의 뜨거운 사랑은 태양처럼 빛나리..."

 

우리는 누구나 '나만의 공간'을 원한다.

그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고, 때론 누군가 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만의 공간'의 참주인은 내가 아니다.

우리가 한평생 바라는 이, 단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

 

 

 

집 앞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가비를 잘게 부수어 깔아놓은 하얀 길을 따라가면...

 

 

 

손질되지 않은 의지가 홀로 놓여있다.

이는 '의자'이지만

내게 '앉기'를 청하기보다는, 자신과의 대화에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어떤 사람인가 ? ..."

 

보이는 실재는, 보이지 않는 의미와 본질에로 우리를 이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순히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의 현재'를 살아가는 것들임을 생각한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은 없으며,

우리가 오감으로 알 수 없는 미물조차도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에로 이끄는 것이다.

 

 

 

때로는 둘이서...

아침안개는 피어오르고, 따뜻한 찻잔의 커피도 피어오르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피어오르고...

평소에 자주 만날 수 없는 자매들을 이참에 고루고루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생명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그 존재의 목적을 이루어 간다.

우리도 같은 수도복을 입고, 같은 생활양식 안에서 같은 곳을 향해 함께가고 있지만, 또한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가고 있기도 하다. 

 

하느님은 전체이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부분이므로

우리 각자의 고유성이 존중되고 어우러질 때

전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홀로함께...

분명한 것은,

우리 서로간의 친교는

고요와 침묵 속에서 깊어진다는 것이다.

고요와 침묵 속에,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 마음속의 걱정, 갈등, 고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면,

하느님 안에서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만나,

우리로서는 헤아리거나 기대하지 못한 선물들로 주어진다.

 

해결되지 못해도 평화를 얻을 수 있고, 답을 들을 수 없어도 기다릴 줄 알게 되며,

고통은 기쁨을 친구로 데려와 주기 때문이다. 

 

그분 앞에 있을 때

나는 부족한 그대로 온전할 수 있다.

,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 너와 내가 만나는 곳, 비로소 하느님과 너와 내가 만나는 곳,

그 곳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자리이다.

 

그곳이 '하느님께서 계시는 집'인지를 알려주는 표지는 바로, 십자가이다.

그렇다면

내 영혼의 집에 하느님이 계시는지 알 수 있는 표지는

내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하는 내 삶의 모습이다.

 

 이 세상에뿐 아니라 하늘나라에도 '십자가'는 있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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