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자매가 나를 찾아 왔다.
오늘(금요일) 우리 집에 미사 봉헌하는 사제가 독감 때문에 못 오신다고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묻는다.
밤이 늦었는데 할아버지 신부님께 연락해야 할지, 공소예절을 해야 할지...
늦은 밤이라도 할아버지께 전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 줬다. 사순시기라서 더욱.
통화가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얼마 후에 자매가 다시 찾아왔다. 통화가 되었고, 내일 와 주시겠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마음 놓는 표정이다.
신부님은 오늘 새벽, 늘 오시던 그 시간(6시)에 어김없이 당도하셨다.
신부님댁은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족히 1시간은 걸린다. 그것도 차량이 드문 새벽시간이다.
더욱이 우리 집은 산 아래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들어오려면 고개를 넘고 언덕들을 지나야 한다.
어찌보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대부분의 신부님들은 이런 일을 꺼리는 것 같다. 게다가 갑자기 연락을 하면 !!
그러나 할아버지 신부님은 언제든 신명나게 오신다.
우리가 죄송해 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오시기 위해 자동차도 튼튼한 것으로 바꾸셨다고 하니, 당신 일과 중에 가장 첫번째는 아닐런지...
지난 번, 폭설로 교통이 두절 되어 우리 집에 못 오신다고 연락 드렸을 때, 신부님께서는 많이 아쉬워 하셨다.
전화선을 타고 '갈 수 있는데..'라는 마음이 전해져 왔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 째 되는 날 오셨을 때, 다른 날과 달리 신부님은 운동화를 신고 계셨다.
만일 자동차가 고개를 못 넘게 되면 당신 혼자 걸어오실 심산이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져 와 가슴이 뭉클했었다.
이 분의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할 일 없는 은퇴사제라서 이러시는 것이 아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고해성사를 베푸는 일. 사제,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그것을 위해 당신은 존재하는 것임을, 자신은 그것을 위해 불림받았음을 가슴 깊이 새긴 데서 오는 것이다.
오늘 미사 때는, 평소보다 신부님이 더욱 존경스럽고 감사했다.
우리를 위해서라도 신부님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이는 이기적인 바람이 아니다. 마땅히 바랄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