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장맛비가 시작된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꽃들을 땄다.
오늘 아침에는 마당의 풀을 뽑기 위해 일찍 일어나 나갔다.
비를 동반해 오려는지 바람이 습을 머금고 시원하게 불어주었다.
흐린 날에 산은, 제 색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늘은 엷은 청색을 띄고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거기, 멀어지고 있는 누군가가 잿빛 구름으로 흩어져갔다.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풀들은 보드블럭 틈바구니에 겨우겨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도 작아서 손끝에 내 힘을 집중시켜야 할 형편이었다. 손끝이 아플 정도로...
식물들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살아남는 것, 다른 하나는 종자번식.
그 식물들 중 가장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소위 말하는 '잡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잡초가 '겸손'하기 때문이란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그에 자신을 맡기고 한껏 제 몸을 '땅-흙'을 향해 숙이는 겸손...
풀을 뽑으면서 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자랄만큼 자라다가 떠날 때가 되면 떠나도록 둬 두면 좋으련만,
우리 편에서 지저분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거하는 이것이...
언젠가 정원관리 하시는 분께 물은 적이 있다.
풀들이 저마다 자라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면 좋을텐데
뭐하러 잔디밭의 풀을 뽑느냐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잡풀들은 땅을 척박하게 만든다고.
그러면, 땅을 기름지게 하고 살리기 위해서 '잡초'라는 것을 제거하는 것인가보다, 생각했었다.
'잡초'라는 말도 인간이 만든거라지.
인간들은 땅뿐 아니라 공기도, 물도 못쓰게 만들면서, 인간 저들끼리도...
그깟 잡초를 가지고 쓸데 없는 생각이 왜 그리 많은지, 풀만 뽑으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내 삶의 일부이고 또 나의 전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잿빛 구름은 내게 말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그냥 흘려보내라고.
풀들 또한 일러준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의 마음밭에서 뽑히더라도 마지막까지 삶을 다 하라고.
나 또한 자연의 일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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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씨에 대해 말하고 어떤 날씨를 관찰하는 것이 형식적이라 해도 게으른 일은 아니다.
온 존재 안에 날씨가 어떤지 알아야 하고 그것으로 보고 느껴야 하는 합당한 필요성이 있다.
어떻게 하늘이 잿빛이 되는지, 왜 남쪽 하늘은 엷고 서쪽하늘은 푸른지,
어떻게 땅에 눈이 쌓이고 온도계는 18도를 가리키는지,
찬바람이 불면 귀가 왜 시린지 알아야 한다.
정말 이런 것들을 알 필요를 느낀다. 나 자신이 바로 날씨와 기후, 장소의 일부이기 깨문이다.
이 모든 것과 진실로 자신을 나누지 않는다면 하루를 의미있게 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확실히 내 기도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머튼, 시간, 3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