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짐 정리를 한 후 물건들을 내어놓았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는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내놓은 것이다.
얼핏 보니 아깝지만 버려야 할 것들도 제법 되었다.
나는 하나하나 추려 사용할 만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나누고 있었다.
한 언니가 다가와서 들여다 보신다.
그리고는 섞여있는 물건들 속에서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들어 주욱 넘기신다.
많은 글들이 적혀있었다.
뒷장, 아직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종이들을 다시 한 번 넘겨보신다.
노트장을 넘기는 언니의 그 손길에서 아쉽고 서운한 표정이 묻어난다.
"난 남신부님 딸이라서 이런 것 못 버려."하면서
빈 종이를 한장한장 뜯어내신다.
"메모지로 쓰실래요?"
"성경말씀 적으려고~."
"축성"이라는 말마디가 스쳤다.
버려질 종이장.
그 위에 '거룩한 말씀'이 새겨진다.
축성되는 이들, 하느님을 위해 따로 떼어내진 이들.
그 자체로는
마치 이렇게 빈 종이장들처럼
버려질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버리지 않고, 따로 떼어내서 쓰시는 것이다.
축성,
그것은 온전히 하느님의 손길 때문이다.
때문에
하느님의 손길을 담지 못한다면
난 버려질 종이장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