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부터 연례피정에 들어간다.
오늘 집을 좀 일찍 나서서 동기들을 만나기로 했다.
버스표를 예약해야 하는데, 좌석이 있으려니 하고는 예약을 안했다.
출발하기 전에 버스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앗! 오늘 표는 막차까지 매진이다.
다만 20분 후에 출발하는 버스만 좌석이 남아있다.
지금 예약은 가능하겠지만 20분 안에 터미널까지 갈 수 있을까?
가기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방을 둘러메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뛰면서, 전철 안에서 연신 시계를 보았다.
시간도 간당간당 내 마음도 간당간당....
전철에서 내려 터미널까지 뛰었다. 4분전 3분전 2분전!!
버스에 겨우 올라탔다.
씩씩 거리면서 자리에 앉아 차표를 끊겠다고 했더니, 표를 가져와야 한다고 기사님은 난감해 했다.
마침 검표인이 오자, 그분에게 말해보라고 해서
숨을 헐떡이며 이 자리에서 카드로 표를 끊겠다고 했더니, 카드를 본인에게 달라고 한다.
얼른 카드를 달라고....
나는 '카드는 없고 카드 번호만 있는데요.' 하면서 휴대폰 앱을 여는데,
출발시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안 될거라고 한다.
과연 ..... 아무 것도 없다.
"제가 내려야 하나요?" 했더니 얼른 내리라고, 다음 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되지. 얼른 뛰어내렸다. 어찌 해야 할까,...
다른 경로로라도 가는 수밖에...
다급히 버스표를 샀다.
가장 이른 출발은 한 시간 후, 운행시간은 두 시간.
거기에서 또 버스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로 간다.
밤중에나 도착할 것이다.
버스표를 들고 생각했다.
그냥 내일 일찌감치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표를 반납,
땀으로 흠뻑 젖은 몸과 마음을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한 시간 동안 동동거리던 방금 전의 나를 보면서, 로마에서 휴대폰 분실했을 때가 진하게 떠올랐다.
너무 급히 뛰어다녀서인지 슬슬 걸어오는데도 심장이 아팠다.
준비성 없이 방심한 내 탓.
무엇보다도 오늘 모이기로 하고 멀리서 온 다른 친구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으로 힘없이 현관에 도착했는데,
문 앞에 누군가 두고 간 과일상자가 있었다.
이 과일 먹고 가라고 이런 일이 생겼나보다 애써 생각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도 여전히 심장이 아팠다.
방심, 무책임... 오늘 나의 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