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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한다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 안으로 이주하고 부분적으로는 죽는 것과 같다.
그러나 확신하거니와 이 절멸이 자기보다 위대한 타자에 접촉할수록 완전해진다면,
신에게 나아가기 위해 요구된 박탈은 뭐라도 이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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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성과 수동성의 신화'의 이해를 위한 샤르댕 서신.
.... 내 생각에,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다음 세가지다.
첫째, 충실히 순종할 뿐아니라, 실현된 업적으로도 신적 충일의 완성에 기여할 소재들을 만든다는 의식을 지니고 인간적 노력을 경주할 것.
둘째, 이 고통스러운 노동과 증대되는 이상을 추구하면서 최초의 자기포기와 편협하고 태만한 이기주의를 이겨낼 것.
셋째, 생명의 '충만'과 더불어 생의 '공허' 즉 생의 수동성과 섭리에 기인한 감퇴도 소중히 여길 것.
이를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을 위해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모든 요소와 인격을 그 자신 안에서 직접적이고 현저하게 변용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해탈과 노력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결합은 무한히 다양하다. 무수한 성소가 있다.
교회에는 십자가의 성 요한과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가 있다.
누구에게나 성장과 감퇴의 시간이 있다.
때로는 건설적 인간의 노력이 지배하고 때로는 신비적 자기 절멸이 우세하고...
이 모든 태도는 인간의 자연적 인격화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탈인격화,
그 이중운동을 결합하는 동일한 내면적 방향 즉, 동일한 법칙에서 이루어진다.
88-89
교회의 건전성과 완전성은 각 교회구성원이 가장 세속적이라 여겨지는 일에 종사할 의무를 지고,
엄격한 회개에서부터 숭고한 관상성소에 이르기까지 단계적 기능을 정확하게 완수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역할들이 다 필요하다.
교회는 튼실한 나무와 같아서, 뿌리는 땅속 깊이 뻗어내리고 잎은 한낮의 태양도 의연히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언제나 무수한 고동의 음계를 생명의 종합적 활동 속에 함축하며, 각 고동은 영성화의 단계를 형성한다.
이 다양성을 지배하는 뭔가가 있다. 그것은 천상으로 향하는 비약이고 물질에서 얻는 근면과 고통에서 나오는 법열이다.
강조하거니와, 초자연은 우리 본성의 진보를 대망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은 외견상의 절멸에서만 진보를 승화시키고 성취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진보와 신 안에서의 자기포기, 이 두 조건은 상호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나 첫째 것에 대한 둘째 것의 궁극적이고 지속적인 우월,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신비를 의미충만하게 집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