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글리(GLY)는 점심 때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무척 반가워 한다.
그 시간에 몇번 데리고 나갔더니 나를 알아보는 건지...
오늘은 외출을 하고 온 뒤라서 피곤했지만, 오후에 글리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종일 묶여있으니 나가고 싶으리라는 생각에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글리가 갑자기 힘껏 뛰어가는 바람에 나는 줄에 끌려 맥없이 엎으러지고 말았다.
얼굴이 깨졌다. 안경에 찍혀 눈 주위에서는 피가 나고 손도 긁혀 피가 나고,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숲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뭔가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저도 모르게 쫓아간 것 같았다.
글리! 글리! 소리를 지르자 이내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신음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글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글리는 힘이 무척 세다. 평소에 줄을 잡아 끄는대로 따라 오지만 그것은 글리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글리가 내 뜻대로 좌지우지 된다고 착각중에 있다.
글리 뿐 아니라 누구라도 얕보면 안 된다. 그러다가 큰 코 다치는 것이다.
둘째, 글리는 내가 산책시키는 마음을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글리를 보는 내 마음만 측은한 것이지 글리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산책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하느님과 나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측은히 여겨 뭔가를 해 주시는데, 우리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좋은 것이다.
글리가 남겨준 내 얼굴의 상처가 말 한다. "내심 겸손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