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도토리 많아~. 올 수 있는 분들 모두 오면 좋겠어요~. 오늘까지만 줍고 그만 하려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로 덮칠 줄이야...
나는 급히 방송을 했다.
"도토리 주으러 가실 수 있는 분은 나와 주세요~"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이미 둘씩 짝지어 뒷산으로, 옆산으로 가방 둘러메고 떠났다고 한다.
한 팀은 다행히 눈에 띄는 곳에서 막 시작하려던 참이어서 우선 모셔놓고,
다른 팀을 차를 대절(?)해서 부랴부랴 찾아 모시고 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참여할 뜻이 없었지만,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내가 모시고 가야 할 것이고
두세시간 만 줍고 돌아올 건데 나 혼자 돌아 나오기엔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주섬주섬 작업복과 장갑, 비닐 가방 등을 챙겼다.
아! 참거리도 부탁받았으니 그것도...
한 자매와 함께 콩 튀듯 오르락내리락 준비물을 챙겨... 간신히 어르신들을 승합차에 모시고 쌩~~
우리가 다다른 곳은 휴양림이다. 우리집 뒷산이나 마찬가지인 곳.
엊그제 비가 내린 뒤라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여간 청아한 것이 아니다.
저 맑은 물 가운데 들어서면 어디로 가려나...
도토리 나무들이 계곡의 물기를 머금은 탓인지 아직도 잎들이 싱싱하게 하늘로 죽 뻗어있다.
나무에 달려있는 도토리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땅 위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는 제가 저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이 땅'에 있는 나와
내가 이 땅에 오기 전의 '하늘'을 생각해 본다.
주말이어서 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곳곳에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옆에서 도토리를 줍고... @*@
야영을 준비하던 이들, 그저 와서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고, 뭐하는지 묻는 이들도 있었다.
"생명평화 음악회를 열 건데, 도토리 묵 쒀서 그때 손님들에게 묵밥 해 드릴 겁니다."
어떤 이는 "아~ 좋은 일이네요~" 하면서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넣어준다.
빗줄기와 바람과 더불어 땅 위로 내려앉은 도토리들이 빤질빤질 귀엽다.
허리를 펼 겨를도, 머리를 들 틈도 없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기억자 자세로 계속 전진이다.
덕분에 '골이 쏟아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내 머리가 이렇게 무거웠구나...
그래도 이렇게 노동할 수 있는 몸이 아직 보존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알알이 주으면서 벌써 도토리 전문가가 되는가 싶었다.
어떤 것을 줍고 어떤 것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이미 저 스스로 썩어 다시금 땅의 거름이 되기로 한 도토리들이 있는가 하면
소나무 틈새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있는 것들도 있다.
생명창조에 경건함을 표한다.
요즘, 사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는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저는 스스로 싹을 틔우겠다고 일부러 이 나무틈으로 애써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자연으로서 자연에 순응했고, 제 소명을 다 하는 것이라고.
나 또한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내 삶에 순응하며 소명을 다 해야 한다고....
잠시 허리를 펴고 앉았다.
조숙한 탓인지 깍지도 채 벗지 못한 채 떨어져 있는 도토리 형제를 줏었다.
한 녀석은 잘 익어서 제 집을 떠났나보다. 이미 우리 도토리 봉지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
이 두 녀석도 나에게 한 마디 하는가 싶다.
" 삶의 의미를 묻기보다, 그냥 성실히 살라"고...
다람쥐 한 마리가 바위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들락날락한다.
왠 이상한 것들이 제 집 주위에 포진해 있다고, 다른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리려 하는 것인지...
저 바위 틈이 제 집인가 보다.
우리를 향해 한참 섰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바위 위에 등을 돌리고 올라 앉아 있는 걸 보니
왠지
우리에게 서운함이 많은 걸까, 생각이 된다.
자기들은 먹을 것도 많으면서, 내 유일한 양식인 도토리를 샅샅히 낚아채 간다고 하는 건 아닌지...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반들거리는 알 몇개는 그냥 두고 일어섰다.
"조금만 나누어 먹자~"
오늘 두시간 반 동안 우리가 주운 도토리다.
산에 도토리는 아직도 널려 있지만, "때"가 되면 멈출 줄 알아야 하니,
모두들 "아이구구구" 허리를 펴며
감사, 유쾌한 마음으로 도토리 한 봉지씩 울러메고 돌아왔다.
하늘과 땅, 바람과 물, 태양과 비, 공기, 나무, 다람쥐...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