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예수성심성월, 그 중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 후의 첫금요일은 예수성심대축일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 날을 사제성화의 날로 지냅니다. 성체성사는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신 성심의 사랑이 베푸는 탁월한 은혜이며, 사제는 그 은혜를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고 그들을 돌보면서 성화되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주시는 성심께 대한 공경은 우리를 삼위일체 하느님께 인도하는 ‘신비적 사다리’(mystical ladder)로서 교회 모든 신심들의 뿌리입니다.
예수성심을 떠올리면 예전에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평범하고 화목한 한 가정의 가장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아내는 수소문하다가 남편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고 드디어 남편을 찾아가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갈 수 없다고 울분하며 소리칩니다. 그 때 아내가 말합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본인이 가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오겠다고... 그 순간 ‘난 못해!’라고 외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새삼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셔서 밤낮 인간을 좇으시고,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곳을 향하고, 하느님의 사랑은 외면당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그칠 줄 몰라, 당신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아들을 인간 예수로서 인간들 가운데 살게 하시고, 예수 그분은 인간들의 먹이가 되면서까지 끝까지 인간과 함께 사신다!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도금한 이념의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서로를 단죄하고 상처 입히는 아픈 현실을 적잖게 만납니다. 누구나 어떤 모양으로든 거기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밖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붉게 드리워져 생명이 질식당하는 듯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신이 바로 그곳에 함께 있음을 기억하라고, 먼저 용서하고 계속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들어야겠습니다. 알아야 사랑하게 되고 사랑은 삶을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길은 주어져있습니다. 성체성사 때에 예수님을 먹으면서 나의 희생을 다짐하고, 성체 앞에 머물면서 서로에 대한 기다림을 배웁니다. 성경독서를 하면서 그분의 인격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순간순간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약한 사랑이 힘을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불만스럽게 여겨지는 사제, 저답지 못한 수도자, 미운 교우, 눈 시린 행태를 일삼는 이들, 이 나라, 이 세상을 위해 보속과 희생을 바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죄인인 내게 와 함께 가자하시는 그분을 따라 성심의 붉은 바다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09기쁨과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