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표징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성 좋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뿌듯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중들은 배불리 먹은 다음에, ‘표징’을 본 다음에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혼자서’, ‘산’으로 가셨을까요?
사람들이 표징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징을 알아듣기는커녕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방편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의 일’로 환원시켜 버리려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홀로, 하느님 아버지께 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독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독서말씀을 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속된 말로 ‘모욕을 바가지로 먹고’는 오히려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자신들 안에서 솟는 그 기쁨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사도들은, 얼토당토않은 ‘사람의 일’을 ‘하느님의 일’로 들어 높인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도들처럼,
하찮아 보이고, 때론 터무니없이 벌어지는 ‘사람의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알아채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을 받아먹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는,
성체를 모셨다는 것만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거나,
자신을 임금처럼 은근히 높이려고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듯한 생각이 들 때,
사도들처럼,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예수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을 받아먹는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혼자 산으로’ 고독하게 물러가시는 일은 더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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