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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비/요한

십자가 아래서 (요한 19,25-27 )

비아루까 2022. 9. 16. 03:52

* 고통의 성모 마리아

 

사방이 시끄럽다.

앞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소리, 

자동차,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그 소리만큼 흔들리는 집채,

앞 Bar에서 떠드는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 인사

날카롭게 짖어대는 옆집 개소리, 아랫집 공사하는 소리, 비행기 떠가는 소리...

제법 시끌벅적하다. 내가 일체 알아듣지 못하는 말마디들, 그야말로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나 혼자 있는 이 곳에, 이 소리들은 내게 무엇인가?

지금의 나에겐 이 소리들이 시끄러움이 아니라  '위로'가 된다.

 

경당에 혼자 앉아 있다. 

십자가 아래 작은 제대에 초 하나 켜 놓고 앉아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보다, 우선 내가 살기 위해서 앉아 있다. 

 

휴대폰  잃어버린 일이 아직도 스멀스멀 올라와 후회와 자책의 수렁으로 날 끌어내리려 한다.

십자가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못한다. 그저 간절함 뿐이다.

순간 마음속으로부터 들려오는 말씀,  "대신 사람을 얻었잖아."

 

아,  엊그제의 한 순간이 떠오른다.

성당 가는 길에 과일가게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길건너에 있었지만, 아저씨는 아주 환한 얼굴로 손을 힘껏 들어 인사했다.

(평소에 과일 몇 알 사러 갔을 때는 서먹서먹했었다.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니 물건만 집어 왔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날, 내가 되지도 않는 말로 그렇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을 때,

아저씨는 자세한 내용도 모른 채 자신의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휴대폰 사용한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단지 pago라고만 되풀이 했음) 아저씨는 안 받는다고 했다.

다음 날,  cornetto 두개를 감사의 '선물'로 드렸다. 아저씨는 '선물'이니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그 때 이후, 우리는 서로를 얻은 것이다!!

절박한 순간에 '함께' 있으면서  '아는 관계'  '공유'할 것이 있는 관계로 변화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 서 계신 어머니께,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의 제자에게 "이 분이 너의 어머니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사신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과 함께 산 제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아래서 그 두 분은 더 깊게 맺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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