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며 하루를 사랑으로

옮기면서/시글시글

지상에 초대받은 아기 / 무력함의 은총

비아루까 2016. 10. 18. 13:58

 

지상에 초대받은 아기 / 한상봉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우리집에 손님도 한 분 늘었다.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식농사'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작물을 보살피듯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오신 아기에게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편히 집에 모시고, 건강한 육신과 맑은 영혼으로 세상에 나아가도록 다독거리고 더불어 성장해야 할 것이다.

아기의 몸은 새것이어서 그런지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하얗고, 욕구는 단순명쾌하다.

군더더기나 변명이 없이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부모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걸 보고 천진난만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기는 서너 달 때 가장 천사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히 우리에게 은총이 된다.

내 삶의 양식을 '기꺼이' 바닥부터 새롭게 정렬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사심 없이 무조건 남을 위해 에너지를 나눈 적이 있었던가?

나의 돈과 시간과 힘을 아낌없이 나누어준 적이 있었던가?

상대방을 위해 말소리를 낮추고, 똥기저귀를 빨며, 앞에 두고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었던가?

다른 사람의 양식을 위해 노동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항상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 항상 기뻐할 준비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불안한 타인을 위해 그 자리를떠나지 않고 함께 지켜주고, 밤을 새운 적이 있었던가?

 

  아기들은 그 자신의 무력함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기들이 어떤 완전함으로 어른을 설복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목숨을 지탱할 수 없다는 절대적 무력함이 그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든다.

아기들은 사기를 치지 않는다.

과장된 무력함에서 구걸의 태도가 나온다면, 참된 무력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투신의 태도를 낳는다.

가진 게 없지만 그의 생기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아기이다.

 

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 한상봉

 

*****

 

무력함 ...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이 어찌 돌아가는건지는 새까맣고, 그저 처분대로 끌려다녀야만 할 것 같은, 도무지 백짓장같은 속수무책....

이런 무력함 앞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다.

 

친구가 무력함 한가운데 있다.

그 모습에서 '대속'을 본다.

친구는 말한다. "왜 하필 나냐"고.

아무말도 못한다. 왜 하필 너인지 모르니까.

단지

아기의 참된 무력함이 우리로 하여금 '생명'에 투신하도록 하듯,

친구의 무력함 옆에 또 하나의 무력함으로서 울 뿐이다.

그가 당하는 무력함이 우리로 하여금 '참회'토록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