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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집 / 박노해

비아루까 2016. 5. 26. 13:49


내가 살고 싶은 집


박노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흙마당이 있는 집


감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작은 텃밭에는 푸성귀가 자라고

낮은 담장 아래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은은한 빛이 배이는 창호문가

순한 나뭇결이 만져지는 책상이 있고

낡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집


문을 열고 나서면

낮은 어깨를 마주한 지붕들 사이로

구불구불 골목길이 나 있고

봉숭아 고추 깻잎 상추 수세미 나팔꽃 화분들이

촘촘히 놓인 돌계단 길이 있고


흰 빨래 널린 공터 마당에

볼이 발그란 아이들이 뛰놀고

와상 한켠에선 할머니들이

풋콩을 까고 나물을 다듬고

일 마치고 온 남녀들이 막걸리와 맥주잔을 권하는

그런 삽상한 인정과 알맞은 무관심이 있는 곳


아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제발 헐리지 않고 높이 들어서지 않고

돈으로 팔리지 않고 헤아려지지 않는

모두들 따사로운 가난이 있는 집

석양빛과 달빛조차 골고루 나눠 갖는

삶의 숨결이 무늬진 아주 작고 작은 집


***

나도,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