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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노래/사랑안에거닐라

야훼의 종

비아루까 2015. 9. 6. 14:44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은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정신도 들락날락하고

마음은 담아놓았던 모든 것들을 쏟아내게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짚어볼 때

'그런 나를 잘 견뎌내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현실성 없는 짐작뿐이리라.

실상 그 현실에 처하게 되면.... 아무도 함께 할 수 없이, 오직 '홀로'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리라.

아니다, 견뎌내는 것도 일말의 여지가 있을 때이다...............

 

어제 원로선배님 중 한 분이 우리 공동체에 휴가를 오셨다.

그분은 요양 중이시다.

오랜만에 뵈었다.

몸은 날아갈만큼 얇았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둔해서 서로가 답답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어르신을 곁에서 돌봐드려야 할 것 같아서 한 자매가 그분을 맡아보기로 했다.

 

오늘 낮기도 시간에, 어르신을 돌봐드리기로 한 자매가 떡하니 기도에 참석하고 있는게 아닌가!

지금 이시간에는 어르신과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급히 자매를 어르신께 보내고 낮기도를 마쳤다.

 

식당에 모였는데, 어르신과 자매가 보이질 않았다.

주방을 들여다보니, 어르신은 밀대를 이리저리 밀며 주방 바닥을 닦고 계셨다.

어?? ~~ 이럴 수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점심식사 후 어르신을 침실까지 모시고 갔다.

어르신은 소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겨우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동생은 잘 있어?"  "예, 시집 가서 아들도 있고, 잘 있어요."

"언니는?" "언니도 잘 있어요."

"노래 해 봐."  "무슨 노래 해 드릴까요?"

"음~~" 어르신은 눈을 꼭 감고 기억해내려 하신다. 그러나 좀처럼 기억이 안나시는지 얼굴을 찡그리신다.

"다음에 기억나면 말씀하세요. 꼭 노래 불러드릴께요."

쉬시도록 이불을 덮어 드리고 나오는 나를 향해, 머리를 애써 들어 눈을 맞추시며 물으신다.

"사는 거 행복해?" 그렇다, 이렇게 물으신 것 같았다.

"그럼요. 행복하죠. 수녀님도 행복하시죠?" 여쭸더니 뭐라뭐라 하신다.

"행복해" 하고 대답하시는 것 같았다.

좀 더 신경써서 들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짓말..."

진담인지 농담인지 계속 말씀하셨다. "거짓말..."

웃고 있어도 눈물이 고이는 어르신 얼굴, 언제나 그랬듯이... 

 

어르신은 오랫동안 주방소임을 하셨다.

'야훼의 종'의 노래,

이 분을 생각하면 항상 그 성경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숭고함 앞에 자책인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바람이 차다.

한 계절 발을 내디디면 어디에 더 가까워지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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