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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비/성경쓰기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마태4,1-11)

비아루까 2013. 10. 21. 22:53

(마르 1,12-13; 루카4,1-13)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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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자는 나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당황스럽게 택도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황당무계한 이론이나 논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주 서서히 매끄럽게, 그럴듯한 생각의 길을 따라 끌어 간다. 

 

예수님을 유혹하는데 성경말씀이 유혹자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것처럼,

여러 가치들, 윤리도덕, 신학이론 등등은 우리가 받는 유혹의 걸림돌이 되는데 적격이기도 하다.

런 이론들로 부추겨, 내 안의 희망을 욕망에로 이끌어 가고, 판단을 비판으로 변질시켜 가며, 친밀함의 원의를 소외와 단절로 바꾸어버린다. 

 

유혹 중에 있을 때, 어느 것이 진정 자신의 생각인지 원의인지 알 수가 없어, 혼돈과 안정이 높은 주파수처럼 교차된다.

내면의 평화는 없다. 그것이 유혹으로 넘어가는 표시점이다.

유혹은 견뎌내야 할 것이 아니라, 피하고 끊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은근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겨있는 개구리처럼 감지하기 어렵게, 나를 서서히 끌고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고백을 할 때

"악마를 견뎌내겠습니까?"하고 묻지 않고

"악마를 끊어버립니까?"하고 묻는다.

 

예수님처럼 "물러가라!"고 호통치고 '단 번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악마가 나인지, 내가 악마인지 모를 지경이 될지도 모른다.

평소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혹을 받을 때는 더더욱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악마는 나(인간)와 같은 수준이 아니다. 악마는 '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