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신부님을 거론하게 되었다.
그분은 '욕쟁이'신부로 호가 나 있었다.
지금은 연세가 드셨겠지만, 30년쯤 전엔 제법 젊은 나이였는데,
그런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을 정도면 욕(?)의 정도가 어느만큼이었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예를 들면, [날아가는 놈 옆에 붙어가는 년...] 운운 하는 것이다.
그분이 욕쟁이가 된 데는, 자신의 성소를 지키기 위한 지고한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부님의 이름이 뭐였는지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성씨는 기억해 냈지만, 이름 두 자가 영~ 떠오르질 않았다.
서로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가로 저을 뿐이었다.
눈을 꼭 감고 뇌에 집중해 봐도 맴맴... 생각이 나질 않아 모두 답답했다.
어느새 우린 건망증인지 치매조기현상인지, 하나하나 잊어버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탓이려니 하지만 은근히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즉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내 평생을 걸고 살아온 이의 이름도 잊어버리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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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이처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프라이밍(priming)이라고 한다.
깜빡 잊은 내용도 대부분 프라이밍으로 다시 떠올릴 수 잇다.
그렇다면 최적의 프라이밍은 무엇일까?
깜빡 잊기 직전과 비슷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적의 프라이밍이다.
가령 일이 있어 방에 들어갔는데 무엇 때문에 들어갔는지 잊어버렸을 때는 방에서 나와 원래의 자리에서 주변 상황을 둘러보면 기억이 비교적 잘 떠오른다.
그런데 건망증은 어른의 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느끼는 것은,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이들도 일상적으로 자주 깜빡 잊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아이들은 건망증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들은 나이 탓이라며 의기소침해한다.
어쩌면 일부러 나이 탓으로 돌리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망증으로 낙담하기 전에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아이와 어른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축적한 기억의 양이 다르다는 점이다.
100개의 기억에서 필요한 기억 하나를 찾아내는 것과 1만개의 기억에서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똑같을 리는 없다.
아이보다는 어른의 뇌에 많은 기억이 담겨 있으므로 아이처럼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억의 용량이 많아진 뇌가 끌어안은 숙명이다.
뭔가를 깜빡 잊었을 때는 그만큼 자신의 뇌에 많은 지식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자.
건망증은 누구든 갖고 있다. 뇌는 항상 동요한다.
그래서 이따금 타이밍이 나쁠 때 누가 이름을 물으면 생각이 나지 않고, 타이밍이 좋을 때 물으면 금방 튀어나온다. 건망증이란 이런 것이다.
건망증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이름이 맞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으니, 모순된 상황이 뇌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뇌는 해당 이름을 찾아내면 자동적으로 검색을 멈춘다.
그런데 자신이 찾는 이름이 바로 그 이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검색한 것인데, 그 이름을 찾는 순간 정답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는 특정한 키워드를 치면 바로 정답을 얻을 수 있다.
즉 인터넷 검색은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찾는 것이다. 이것은 쉬운 작업이다.
하지만 뇌는, 정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낸다. 기억을 떠올리는 뇌 작업은 신기하다.
게다가 속도 역시 인터넷 검색 엔진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다.
물론 깜빡 잊었을 때는 정답이 떠오르지 않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모순된 구조가 신기하지 않은가.
건망증은 기억을 불러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단지 기억을 불러내지 못하는 것일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뇌에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것은 질병이다. 치매가 거기에 해당한다.
건망이란 말 그대로 건강하게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즉 깜빡 잊어버리는 것이 건망증이다.
기억은 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므로 건망증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착각하는 뇌/ 이케가야 유지/ 리더스북/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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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안 날 때, "되돌아가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상에서 많이 경험하는 바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만 가면 떠오르는 생각, 기억.
그 기억이 그 때 그날처럼 생생하게 요동쳐 온다면,
참 많이 아프고 고통스런 기억이라면,
그렇겠다, 그 지점에 가지 않으면 되겠다.
정말, 건강하게 잊어버리는 때가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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