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비/마르코
존재의미(마르 11,11-25; 1베드4,7-15)
비아루까
2012. 6. 1. 09:20
오늘 열매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는 예수님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이 따른다.
무화과나무는 과실이다. 잎을 보고자 하는 나무가 아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나무의 본질이고 어쩌면 존재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의 집, 기도하는 집' 은 거룩함이 그 본질이다.
하지만 더러운 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양분을 빨아먹는 더러운 곳으로 변질시켜놨다.
정작 거룩함을 위해 자신을 봉헌했다고 하는 이들이...
나의 존재의미를 생각해본다.
'존재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첫째 소명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있는 것'만은 아니리라.
'어떻게 있는가'는 중요한 것이다.
그건 '관심'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에,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가치척도가 달라질 것이고
그 척도에 따라 행하거나 취하거나 거부하거나 버리거나 할 것이다.
돈에, 권력에, 욕정에, 혹은 나누고 동참하고 베풂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랑하면서 존재하는 것,
기쁨이나 즐거움 뿐 아니라 희생과 고통이 동반되어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을 향해 존재해 가는 것,
그렇게 참기쁨을 알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