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다른 사람이 우리를 향해 던지는 돌이나 화살을 피하듯 그림자 투사를 비껴가야 할 필요가 있는 반면, 의식적으로 타인의 그림자를 짊어짐으로써 더 큰 선을 행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작은 어촌에서 한 여자아이가 임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소녀를 볼 때마다 아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캐물었고
행실 나쁜 계집애라며 손가락질까지 해댔다.
이런 분노 섞은 비난을 견디다 못한 소녀가 어느 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아기 아버지는 바로 신부님이란 말예요!”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이 문제를 따지러 신부에게 몰려갔다.
그러나 신부가 보인 반응은 “아!그래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이 성직자를 배척하며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때쯤 한동안 마을을 떠났던 청년이 돌아와 이 여자아이에게 청혼을 했다.
그제서야 아이의 아버지가 이 청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신한 소녀는 청년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부랴부랴 성직자를 찾아가 사과를 했다.
그러자 신부는 똑같이 “아!그래요”라는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하는 동안 인내하는 힘을 보여준다.
성직자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마을 주민들의 그림자 투사에 대응했다.
상황에 저항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그는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여지를 남겨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민들은 후회했다.
“왜 우리들은 그렇게 쉽게 여자아이의 말을 믿었을까? 왜 우리가 신부님을 공격하는 편에 섰지?
어떻게 하면 우리 내면에 있는 걱정과 불편함을 대면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은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합리적으로 잘 다루지 못하거나 우리 자신에게 보복하려 들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것은 우리 내면의 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 안의 그림자가 튀어나올 기회만 엿보고 있거나
불이 붙을 기회를 노리고 있을 때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내면에 있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바깥에 있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참 신기하게도
성직자의 말보다 아이의 말이 진실이라고 아무 의심없이 믿는 경우,
믿는다기보다 그냥 끌려가는 듯한 그런 경우를 가끔씩 경험하게 된다.
그런 때 침묵!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우리를 '진실'로 인도하는 음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