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기면서/영성

외로움과 고독, 그리움 1

비아루까 2019. 3. 14. 22:26

외로움과 고독, 그리움


  외로움과 고독과 그리움은 사랑하는 대상과 친밀한 사랑이나 대화를 나눌 수 없어서 생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그리움이 움터 올라옴을 인간이 느낄 때, 그 감정은 외로움으로 표현될 수 있다.

  외로움은 인간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에서 일어난다.

외로움은 정답게 지내던 사람이 자기 곁에 없어서 마음이 텅 빈 상태이다.

자기를 사랑하던 할머니나 할아버지, 이모 등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외로움으 맛본다.

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비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슬퍼하고 함께 했던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보통은 다른 애정의 대상을 찾아가 그 빈 공간을 채운다.

이사악도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사랑하며 어머니를 ㅇ맇은 슬픔을 달랬다(창세24,67 참조).

그러나 아무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기분전환을 하거나 대용물을 사용하여 그 순간을 잠깐 잊을 수는 있으나 곧 다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찾아뵙도록, 우리 안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이 갈망은 하느님을 만날 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외로울 때는 빈 공간이 아무리 커도 시선이 밖을 향해 있으므로 애정을 충족시킬 감성적이로 감각적인 대상을 찾아 기웃거리기가 쉽다.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바로 그때 기도를 하면, 마음은 똑같이 비어 있지만 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어느 틈에 깊은 내부를 향해 쏠리고

시간의 흐름 안에서 외로움은 고독으로 변화해 간다.

고독은 감성이 정화된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어떤 결핍으로 인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결핍의 대상이 이젠 하느님 한 분으로 고정되어간다.

고독 속에서 영원한 사랑과 기쁨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고독한 사람은 세상에서 좋다는 온갖 것들이 고독에 대한 약디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외로울 때는 언제든 자신을 만족시킬 사물을 찾아 갈 준비가 되어 있는데, 고독할 때는 비록 외로움이 아직 섞여 있기는 하지만 깊은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 고통은 '영원함'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에 기분전환을 하려 하거나 대용품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하느님이 아니면 그 무엇으로도 갈증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워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또 떠날 마음도 없다.

수도자들의 삶이 바로 하느님을 찾는 이같은 고독한 여행이다.

수도자들이 느끼는 부재의 고통을 '외로움'이라 하지 않고 '고독'이라 함은 이 때문이다.

수도자들이 '고독'을 찾아 의식하면서 그 안에 머물ㄹ고 힘쓰는 것은 고독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속에서 고독이 무르익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솟아오르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외로움 그 축복의 시간, 구원의 마리 헬레나, 성바오로, 7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