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친구들
새벽부터 가족들은 모두 가을 나들이를 갔다.
원래 계획으로는 내가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내 형편상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모모, 차오, 미미도 조용하다.
아침나절 잠깐 기사님이 개들을 보러 다녀가는 소리만 있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본다. 바람소리만 보인다.
고요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 모습이 뚜렷하다.
라디오를 틀어 음악을 듣는다.
친구가 안부를 묻는것 같다.
오랜만에 사진기를 꺼냈다.
100% 충전된 상태 그대로다. 한참을 만나지 못한 서운함이 꽉 찬 듯하다.
고요함 속에서 맘껏 흐들리는 존재들을 사진에 담는다.
행복하다.
기도방에 가서 앉는다.
오늘 복음말씀을 소리내서 읽는다.
내 목소리가 맑은 시냇물처럼 내 귀로 흘러들어온다.
반갑다. 한 모금 목을 축인다.
노래하고 싶어진다.
만날 수 없지만 언제나 그리운 이 앞에서 노래를 한다.
'아무 것도 너를'
'주께 가오니'
내가 힘들 때 부르던 노래다.
소리가 코를 통해 머리로 올라간다. 편하다.
내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는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바람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오랜만에 옛친구들을 만났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바이러스에게 약속했으니...
우리집 마당에 십자가가 누워 있었네 !!
바다와 호수가 하나인 듯 둘인 듯.... 물을 담고 있는 쌍둥이다.
억새는 바람결에 맞춰 신나게 흔들리는데, 가장 높은 가지에 저 혼자 고고하게 핀 분홍빛 동백도 신나긴 매한가지다.
박꽃 줄기가 아기예수 가족들이 사는 집 지붕에서 제 시간을 다 하고 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이 담긴 항아리들 '곰삭아라, 곰삭아라' 조용히 자장가를 들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