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기면서/시글시글

담쟁이 (도종환)

비아루까 2016. 1. 22. 21:42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