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기면서/시글시글
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비아루까
2015. 8. 28. 20:01
+ 키큰 나무에게.
오늘, 바람에 흔들리는 신음소리 같은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바람을 멈추게 하려고 나는 안간힘을 썼다.
왜 바람에 흔들리냐고, 바람을 멈추게 하려고 ...
때문에 나의 안간힘은 나무에게 더 세찬 바람으로 부딪쳤을 것이다.
돌아가는 나무의 뒷모습이 그런 나를 비추어주었다.
나무에게 위로가 필요했을텐데...
시 한 편이 떠 올랐다.
분명, 나무에게 위로가 되리라는 그분의 속삭임처럼...
뿌리가 나무에게 /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 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 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