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노래/사랑안에거닐라

부러움이 기도 되길

비아루까 2015. 6. 14. 11:00

 

2015. 6. 12. 금

 

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마구잡이로 간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는 순서도 우리 입장에서 그렇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어떤 세상에서부터 온 것이라면,

그 세상에서는 또한 마구잡이로 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 마구잡이로 갔다고 하지만

가버린 그들이 지금 있을 세상에서는 순서대로 왔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세상의 순서에 따라 사는가?

아마도

내가 경험하는 이 세상 아닌 '다른 세상'의 순서에 따라야 하겠지.

그 세상은 분명

유한한 존재, 육에 갇혀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현재를 초월'하는 세상일테니까.

 

지난 목요일, 연례피정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잘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한 후

즉시 쓰러져

그냥 우리 곁을 떠나신 원로수녀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런 짧은 생각들이 떠다녔다.

 

나도 마구잡이 순서에 의해 이세상을 떠날 것이다.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바로 코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가장 분명하지만 가장 불확실한 그 "때"를

복되게 맞이하고 싶다.

 

 

돌아가신 원로수녀님과 한 해를 함께 산 적이 있다.

수녀님은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시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수녀님이 만들어 주신 '도가니탕'.

내 생전 처음 먹어본 것이고 아마도 단 한번의 경험으로 끝날 것 같다.

그 도가니탕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관 속에 평화롭게 누워계신 수녀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

허리를 굽혀 수녀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말씀드렸다.

"수녀님, 도가니탕 참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하늘나라 가시면, 저희들, 잘 부탁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중에 만나요."

 

장례를 다 치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점심주문에 착오가 생겨 모두 밥을 굶게 생겼다.

도가니탕 맛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껏 인사드렸는데, 점심을 굶게 하시다니...

 

평소에 검소하고 단정하신 수녀님 답게

하느님과 진한 만남 후에, 갑자기 가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시더니

점심도 못 먹게 하시면서 두 번 놀라게 하셨다.

영정사진이 왜 그리 환하게 웃는 모습이셨는지 이제 알겠다.

"놀랐지?"하시는 듯...

 

백세 시대,

오래 사는 것이 염려로 여겨지는 요즘,

수녀님, 참 부럽게 이 세상을 떠나셨다.

 

부러움이 기도가 되면 좋겠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느님께서 날 불러가시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