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방을 옮겼다.
지난 번에 살던 방은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서쪽이라 해도 창을 열면 산의 면도질 된 부분이 떡하니 서 있고, 고개를 들어야 나무둥치들을 거쳐올라 하늘을 보게되는 지점이다.
하루 중 햇빛이 드는 시간은 30분 쯤 될까? 그나마 그 빛은 장애물들을 통과한 후 겨우 와 닿은 듯 힘없이 지나가곤 했다.
그래서 빛이 없으면 좋을 시간 즉, 눈을 감고 잠을 잘 때에만 들어갔었다.
여름에 습기, 겨울에 시린 추위만 좀 덜하면 내겐 안성맞춤인 방이었다.
새순이 피어나는 소리, 바람소리와 낙엽 구르는 소리, 새소리와 빗물 떨어지는 소리 뿐,
인기척마저 고요속에 흡수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하다는 수도원인 이곳에서조차 고요가 그리울 땐
습기와 추위를 그대로 느끼며 들어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방을 옮겼다.
늘 시퍼런 얼굴빛을 하고는 심심찮게 비슬거리는 모양새가 자매들에게 은근히 걱정을 끼쳤나보다.
내가 방을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도 공동체 책임자가 햇빛 가득한 피정집에서 사람에게 햇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 데 있으리라.
어쨌든 공동체의 배려로 좀 넓고 따뜻한 방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햇빛을 등지고 있는 형편이고, 이 방이 가장 좋은 방으로 소문이 나 있다)
요 며칠 사이 내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특히 냉장고, 시계 등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잠을 제대로 못 잔다.
그런데 좀 더 넓고 따뜻한 이 방에 보일러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것도 일어나는 시간 한시간 쯤 전인 것 같다. 아!! 참으로 어려운 시간이다.
모든 것이 충족되는 상태는 없다.
사람도 멀리 보았을 때와 가까이에서 겪을 때가 같지 않듯이...
사람이든 무엇이든
좋은 점을 생각하면서 지내다 보면, 어려운 점은 시간과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질 것이다.
소음처럼 느껴지는 소리들 안에서도 점차 고요를 만날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간을 지나면 다시금 고요해지겠지, 시간이 지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