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노래/꽃차

쑥차 1

비아루까 2014. 5. 2. 21:05

 

며칠 전부터 마을 밭고랑에 쑥캐는 아낙들이 보였다. 정겨운 단어를 쓰니 '아낙'이지, 검은 승용차 타고 온 그들과 어울리진 않는다.  

요즘 한창 쑥이 쑥쑥 자랄 때인가보다.

아무리 제멋대로 쑥쑥 자라는 쑥이라 해도,  한 철. 이 때가 지나면 맛있는 쑥차를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점심 후 기사님과 함께 부랴부랴 우리의 '쑥밭'으로 갔다.

그곳은 우리 언니 수녀님들도 모르는 곳이다.

옆집 절 입구를 돌아, 시내를 건너, 산길로 가는 옆 공터에 보들보들한 쑥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난 그 시내를 처음 보면서부터 '크릿시내'라고 이름 붙였다.

 

기사님은 낫과 마대를 들고 오셨다. 나는 커다란 바구니 하나만 달랑 들고 갔다.

그런 나를 보시고 기사님이 한 말씀 하신다. "장갑도 안 갖고 왔네요.~"  기사님은 낫을 내 몫까지 두개 챙겨오신 것이다.

난 피식 웃기만 했다. 사실, 기사님이 다~ 베 주시길 기대하고 왔는데...

 

분위기 파악, 나도 거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맨손으로 낫질을 썩썩 해 나갔다. 기사님 못지 않게...

아마 기사님이 속으로 은근히 놀랬을지도 모른다. "맨손으로 하다니..."

 

한 바구니를 채우고는 내가 "이제 그만 할까요?"하니,

기사님이 또 나를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신다.

 "한 바구니 해 갈려고 차까지 끌고 왔십니꺼? 거기 앉아 계시이소."

기사님 얼굴에 약간의 한심스러움과 기막힘과 우스움이 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안 되겠다"  나는 다시 낫을 들고 썩썩 쑥을 벴다.

 

수련기 때 낫질하다가 벤 손가락의 상처자국을 들여다 보았다.

수녀원에 와서 생전 처음 잡아 본 도구, 남들 낫질 하는 모양 보고 막무가내로 쫓아 하다가 순간 베어버린 자국.

그땐 조금 서러웠었는데...

이런저런 옛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썩썩 쑥을 베어 나갔다. 아주 능수능란한 폼으로. 

 

허리가 아파 나는 낫을 손에 쥔 채로, 요령을 피운다. "저 언덕에도 쑥이 있는지 보고 올께요." 

기사님은 말이 없다.

돌아와 보니 바구니에 쑥이 수북이 쌓였다.

"이제 가입시더."

바구니를 성큼 들고 가는 기사님을 따라가면서 내가 말했다. "저쪽에는 쑥이 훨씬 더 커요. 월요일에 또 베 주세요."

기사님은 또 그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지요." 하셨다.

 

집에 돌아와 쑥을 마대에 펴 놓고 방송을 했다. "딩동댕♬♪♩수녀님~ 쑥 다듬는 것좀 도와주세요~ 쑥 다듬습니다~"

한분 두분 수녀님들이 행차하셨다. 합이 일곱!  "어마~ 우째 이리 많다냐?" 오시는 분마다 놀라신다.

오후 내내 쑥을 다듬었다. 보드라운 부분만 가려서 따로 바구니에 담았다.

저 많은 걸 언제 다듬지, 생각했는데

역시 '내 손이 내 딸이다'는 말이 실감났다.

 다듬은 쑥을 잘 챙겨놨다. 그 다음 작업은 내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