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풀기
연례피정을 마쳤다.
고단한 날들이었다.
피정 시작 전날 그 새벽녘에
잠깐동안의 강의록 정리작업으로
마음과 정신이 일단락 된 터라
피정을 평온한 마음상태로 시작했고 강의 전의 내 마음은 담담했다.
그런데 본 강의 시간을 마친 후 나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강의 한 나 뿐만 아니라 회원수녀님들 역시 벌~겋게...
이유는,
첫째, 모두들 강의를 열심히 들으려 무지 애를 썼기 때문이고
(듣는 자신들보다 강의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둘째, 내 평소 이미지에서 벗어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며
(내가 정석이고 반듯해 보인다고 하는데... 난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의 생각이 그런 건 할 수 없으니...)
셋째, 쉼 없이 80분을 줄줄이 꿰었다는 것 때문이다.
(첫 시간이라서 예상보다 시간이 초과되었다. 사실, 시간 예상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강의를 마친 내 마음은 감동으로 일렁였다.
강의를 듣는 회원 수녀님들의 마음,
선배로서 후배에게, 후배로서 선배에게 용기를 주려는 그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기도는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강의 뿐 아니라 피정 동안 많은 활약(?)을 했다.
그룹작업이 많았기 때문에 그룹원들의 말을 제대로 모아 발표하거나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진행요원처럼 여러가지로 도와야 했고
전례안내자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해서 공동체에 이롭다면 다 하리라 마음 먹었으므로
몸은 조금 고단해도 마음은 가볍고 흥겹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이 나의 진면모라는 걸 나는 안다.
몸으로 움직이는 것 외에 공동체를 대신해서 '꿈'까지 꾸었다.
그룹모임이나 공동피정을 할 때 꾸는 꿈은 어떤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나의 꿈 내용을 자매들 앞에 공유하면서 우리의 비전을 나누기도 했다.
몇몇 자매들은 꿈 내용을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삶을 재조명하거나 방향을 잡아가기도 했다.
함께 피정한 회원들이 나로 인하여 힘을 많이 받았나보다.
사실, 나보다는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힘이라는 걸 안다.
하느님께 감사했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해서...
압축 풀기! 성령께서 하시는 일!
앞으로 여덟 차례 더 성령과 함께 압축 풀기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