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기도 (루카18,9-14; 집회35,15ㄴ-17.20-22ㄴ; 2티모4,6-8.16-18)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이 기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이어졌을 것이다.
"깊은 구렁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시편130)
스스로는 헤어날 수 없는 구렁!
어릴적에 본 영화 '타잔'이 생각난다.
밀림에는 늪이 많이 있다. 늪이라는 표가 확실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새 '늪'에 빠지게 된다.
그 늪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제아무리 밀림의 왕자 타잔이라 해도...
그런데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위기 절정의 때에 타잔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다.
바로 원숭이 치타가 타잔에게 튼튼한 '줄'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타잔은 그 줄을 잡고서야 비로소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타잔 혼자서는 밀림의 왕자가 될 수 없다. 한낱 원숭이이지만, 치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세리가 자신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로 그 때문에,
그의 기도가 하늘로 들어올려진다.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집회35,20-21ㄱ)
이제 세리는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끝일까?
기도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니다.
기도와 겸손한 마음이 행위로써 완결되어야 한다.
세리는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의로운 세리'로서 살거나 혹은 세리로서의 삶을 '청산'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는 일 없게,
보잘 것 없는 이들, 힘없고 능력없는 이들, 한낱~밖에 되지 않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온전히 겸손하게 하느님을 우러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