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대화의 자리 (루카 9,18-27)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 대부분 외부상황들에 대해 말한다.
가깝게는, 누구는 이번에 아들이 결혼한다고 하더라,
누구는 시어머니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하더라,
또 누구는 통 사람들을 안 만나려고 한다더라,
누구는 일이 잘 안돼서 걱정이 많더라...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 되겠느냐...
소위 "~라고 하더라"로 일관하는 것이다.
지인들의 근황에 대해 나누는 것도 좋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좋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나누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대화이고 만남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신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대로 잘 알려드린다.
제자들 역시 사람들이 운운하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직접적으로 물으신다.
진정한 대화에 돌입하시는 것이다.
"나는 너와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보다, '너와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정체성의 혼돈 속에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고 하시는 것 같다.
예수님의 갑작스런 이 질문에 베드로는 얼떨결에 대답한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에 답을 제대로 말씀드린 셈이다.
그러나 답을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론적인 앎과 체화된 앎은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나는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하는'하느님의 그리스도'이다.
너희는 이런 나처럼 살게 될텐데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
"이런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겠느냐?"
"매일 너 자신을 버리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느냐?"
"나를 위해서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매일 매순간 이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어떻게 응답이 가능할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신 때는
바로 "혼자 기도하실 때" 였다는 것을...